저는 77년 11월 25일에 서울 금호산부인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아직 병원에 있었던 11월 27일은 홍수환 선수가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로 온 국민이 TV앞에 모였던 날입니다.
그 당시 아버지는 엄마 심부름으로 머 사러 갔다가 흑백티비앞에서 그 경기 곁눈질로 보시느라 조금 늦었다고..... 들었습니다.
4학년이었나... 국민학교에서 시험을 봤는데 전 과목 만점을 받았던 발표를 생일에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집에 오자마자 자랑했더니 밤늦게까지 일하시느라 항상 바빴던 엄마 아버지께서 '그래 잘했다' 한마디 하시더군요. 너무 반응이 없어서 살짝 서운해할 즈음, 엄마가 눈치채고 저 손잡고 서점 가서 책이랑 문제집, 그리고 아이큐 점프 만화책도 사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 뒤로 저는 제 생일에 크게 선물 사달라고 한 적도 없고, 또 20대, 30대에도 크게 제 생일을 챙겨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그렇게 기념일에 대해 무관심한 집안에서 자라난 저인데, 딸을 낳은 뒤로, 어릴 때부터 딸이 제 생일 축하를 해줍니다.
2년 전인가... 받았던 선물입니다.
감동받고 놀라기도 했고, 아빠는 그냥 다 미안한 마음이 크고 항상 아기 같다 생각했는데
어린 나이에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고 표현해 주는지... 어느새 생각보다 너무 일찍 철이 들었나 싶기도 했습니다.
예전에 엄마 돌아가실 때쯤
엄마 일기장을 발견했는데, 차마 읽을 수가 없어서 외면했었습니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언젠가 문득, 그때 엄마 생각이 궁금해져서 찾아봤는데 이미 다 없어진 뒤더라구여... 그래서 저는 제 스스로 기록을 남기고 일기처럼 적는 것도 있지만, 언젠가 혹시 딸이 궁금해서 찾아본다면 볼 수 있게 하려고 블로그에 제가 좋아한 거, 산에 가고 영화본 거 이런 것들을 적고 있습니다.
어제 생일 전날 아빠 오라고 하더니 이번에도 또 선물을 줍니다.
아빠 진돗개 닮은 명견이라고 강아지를 그렸답니다. ㅋㅋㅋ
둘이서 같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는데,
갑자기
엄마가 루게릭으로 위루관 수술하기 전에
저에게 엄마가 했던 말이 기억났습니다.
너 어릴 때 참 예뻤다. 넌 할 만큼 다 했어.
어릴 때 엄마에게 참 많은 기쁨을 줬지. 그냥 다 알아서 잘했잖아.
학교 가면 다른 엄마들이랑 선생님이 너 자랑해서 기뻤고, 뭐든 알아서 척척 잘해서 그냥 다 좋았고 든든하고 뿌듯했어. 너 커서 입시도 그렇고 군대도 그렇고... 이혼도 그렇고... 너 엄마한테 많이 미안해하는데... 반대한 결혼 너가 좋다고 해서 그려려니 한거고 이혼도 개명도 오죽했으면 했을까 했지. 너 어릴 때 엄마는 이미 큰 기쁨 많이 받았어. 그래서 엄마 힘들고 다 때려치우고 도망치고 싶고 죽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항상 너 때문에 버티고 살았다. 괜찮아.
너 아들로서 엄마한테 기쁨 많이 줘서 행복했다....
이런 얘기였던 거 습니다.
사실 어릴 땐 너 때문에 내가 산다... 이런 말이 그리 좋게 들리진 않았습니다. 부담되기도 했고... 엄마는 그냥 엄마 좋아하는 거 하고 엄마 인생 살라고 되려 엄마한테 핀잔을 주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서 그렇게 아들에게 핀잔받던 엄마 나이보다 이제 제 나이가 훨씬 많아졌습니다.
너무 일찍 하늘나라 가신 엄마 생각하면 미안하고 미안하고 너무 죄송한 마음입니다.
그리고 딸에게도 역시 미안한 게 너무 많습니다.
잘해준 것도 없는데 그래도 아빠라고 이렇게 생일 챙겨주고, 신경 써주니 더 고맙고 또 미안하고 그러네요...
오늘 특별히 제게 생일 축하한다고 연락 주시고 선물 주시고... 챙겨주신 분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사실 오늘 말고도 한 10여 년 특히 힘들고 어렵고 그럴 때마다 손잡아준 분들이 항상 있었고, 계속해서 저를 도와주신 분들이 정말 정말 많았습니다.
이제 살아야겠습니다.
미안해서라도 살아야겠고, 또 고마워서라도 일어서야겠습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겠거니 묻어두고, 앞으로 올 좋은 일들 생각하면서 더 잘 살아야겠습니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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