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활/하루하루

F에서 A로

by 오뚝이 명견 2024. 12. 1.
반응형

 

지난가을에 썼던 글에 이어서 중 3 딸의 변화 그다음 얘기를 적어본다. 

 

2024년 중 3 1학기는 딸에게 그야말로 질풍노도의 시기였다. 그리고 특히 성적 면에서는 이제 수. 포. 자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었다. 안 그래도 떨어져 사는데 연락도 잘 안되고, 보기도 힘들고...

 

그러다 조금씩 조금씩 마음을 녹이면서 자꾸 친해지려고 했고, 이어서 공부에 있어서도 조금씩 변화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질풍노도 vs. 질풍가도

 

질풍노도 vs. 질풍가도

2024년 중 3이 된 딸아이가 있다. 2024년 상반기와 하반기, 아마도 딸의 인생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변곡점의 시기가 아닐지... 기록을 되짚어 본다. 2024년 2월. 비록 이혼해서 따로 살지만, 작년까지

2002ych.tistory.com


 

1학기 수학 점수

46점 / 30점

 

2학기 수학 점수


96점 / 84점

 

정말 기적같은 일이었다. 

 

1학기 기말고사 시험지에는 사다리가 그려져 있고, 곰돌이와 고양이가 그려져 있었는데... ㅎㅎ

 

루트도 모르고 근의 공식도 모르고 기울기나 절편도 모르는 상태에서 삼각비와 원이 나오는 2학기 수학에서 저런 점수를 받는다는 게 가르친 나도 신기하고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다.

 

1학기 F등급에서 2학기 A등급을 받기까지 몇 번의 고비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꾸준하게 성실하게 또 때로는 독하게 덤벼든 내 딸이 자랑스럽고 대견하다. 

 

시험 끝나고 3주간 놀고서 어제 오랜만에 만났는데, 바로 고등학교 수학 공부를 하자고 하는 모습에서 기특하고 감사했다.

 

그리고 또 역사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역사 강의를 하고 싶다고 괜찮겠냐고 물어보는데, 바로 흔쾌히 아주아주 좋다고 아빠는 좋다고, 너한테 잘 맞겠다고 큰소리로 동의해 줬다.

 

덧붙여 꼭 역사가 아니더라도 한국의 말과 글, 한국의 역사, 한국의 K-pop, 영화, 미술, 문화 등등 그런거를 가르칠만한 수요는 아주 많을 거 같고, 너랑 잘 맞을 거 같다고, 앞으로 그런 방향으로 계속 생각해 보라고, 아빠는 아주 맘에 든다고 해줬다.

 

그랬더니 바로 한국사 자격증도 도전해볼까? 한다. ㅎㅎㅎ 

 

한때는 무기력해서 학교도 자주 빠지고, 특성화고 간다고 하고... 그냥 자퇴하고 싶다고 하고... 왜 사는지 모르겠다고 하고......아주 난리도 아니었는데... 이제는 그래도 툴툴대면서도 뭔가 하려고 하고, 고민하고 그런 모습이 참 놀랍고 고마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한때는 내 딸이지만 너무 남같고 어렵게 느껴지고, 어떻게 해야 할 줄 발만 동동 구르곤 했는데, 결국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래도 부모가 자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 핵심 키가 아닌가 싶다. 


올 한해 내가 딸과의 관계에서 배운 것들을 다시 적어보면

 

. 자식은 내가 아니다. 남이라고 인정해야 한다.

 

. 내맘에 화가 나고 우울감이 크게 생길 때는 일단 그 순간 그 자리를 피하는 게 좋다.

.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되 그 이상의 기대는 하지 않는다. 

 

. 내맘이 먼저 가볍고 즐거워야 한다. 

. 내가 건강해야 한다. 기본적인 체력이 있어야 한다. 

 

. 나도 아버지처럼 조급해지면 순간적으로 화가 난 말투가 되기도 한다. 나는 인식 못하는 사이에 아이는 그 순간 아빠가 화가 난 것으로 알고 바로 도망칠 수가 있다. 나도 그랬으니까.

. 기본적으로 말투나 억양을 신경써야 한다.

. 이왕이면 부드럽고 느긋한 말투가 좋다.  

. 아이가 짜증낼때는 그냥 들어준다. 

. 어설픈 해결책이나 답답하다는 추임새 같은 건 도움이 되지 않는다.

. 차라리 그냥 들어주고 맞장구만 해줘도 좋다.

 

. 친구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 그래서 친구 이름들이 잘 안외워지더라도 자꾸 기억하려고 하는 게 좋다. 

. 아빠는 내 편이다, 나의 보호자다라는 생각이 들게 해줘야 한다. 

 

. 딸에게 서운해할 것 없다.

. 어차피 내리사랑이다. 

. 자식에게 뭔가 기대를 안하는게 좋다.

. 그저 건강하고 밝고 즐거우면 그게 최고다.

 


 

 

수학 공부는 이렇게 했다. 

 

. 선생님이기 전에 아빠다.

. 공부 이전에 관계를 잘 만드는게 먼저.

. 아이의 성격과 습관을 아는게 중요하다.

. 어떨때 아이는 자극받는지, 또 반대로 포기하는지 알아채면 좋다.

. 중간에 포기하고 잘 안될 때는 보채지 말고 기다려주는 게 좋다.

. 본인도 공부하고 싶고, 잘하고 싶은데 안되는걸 어쩌겠나. 굳이 거기다 대고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 도움 안 되는 잔소리일 뿐이다. 때론 기다림도 필요하다.

. 현실적인 목표를 공유한다. 

. 우리의 처음 목표는 50점만 넘기자였다. 

 

. 시험때까지 남아있는 시간과, 공부해야 할 시험범위를 확인해서 전체 큰 틀의 그림을 같이 그린다. 

. 처음에는 쉬운 문제를 풀면서 자신감을 갖는 게 좋다.

. 쉬운 문제들을 푸는게 계산 실수를 줄이는데도 도움이 된다. 

 

. 문제집을 여러권 사서 유형별로 쉬운 것부터 반복학습을 한다. 

. 처음에는 3권을 샀고, 중간고사 때 최종적으로 6권을 사서 풀었다.

. 아이에게 비슷한 유형의 문제를 여러 문제집에서 제각각 뽑아서 제시해 준다. 

. 어느 정도 실력이 붙으면 빨간색 색연필로 동그라미 치는 맛을 알게 해준다.

 

. 내가 주도해서 끌고 가는 학습이 아니라 아이에게 주도권을 준다. 

. 쉬는 시간, 공부 시간도 아이가 정하게 한다. 

. 잘한다 잘한다, 이 정도면 대단하다 하는 추임새가 중요하다. 

. 중간중간 이정도면 몇 점 정도 받겠다. 우리 이만큼 했다. 큰 틀에서 우리 위치가 어느 정도 되는지 알려준다. 그러면 스스로 얼마큼 더 할 수 있고, 더 해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 결국은 아이 혼자 집중해서 공부하는 시간이 중요하다. 

 


 

이제 고등학교 수학을 가르쳐 달라고 한다. 

 

그냥 돈 줄 테니 좋은 학원이나 과외선생님 붙여주면 안 되나 하는 쉬운 생각부터 들지만... 그건 회피지.... 내가 도망가는 거지...

 

어쩌겠나. 일반 학원은 가기 싫고, 아빠가 가장 자기를 잘 아니까 수학은 아빠한테 배워야겠다는데...

 

내가 고등학교 수학도 가르칠 수 있을 실력이 되나 모르겠네... 손 놓은 지 너무 오래됐는데...ㅋ

 

산에 조금 덜 가고, 회식 덜 가고... 내 시간 줄여서 딸이랑 같이 공부하는 건데.... 어느 자식이 아빠와 이렇게 같이 공부한다고 하겠나... 앞으로 길어야 2~3년인데... 힘닿는 데까지 해보는 수밖에 ㅋㅋ

 

 

12월, 1월, 2월... 또 한 번 해보자.

그리고 우리 2월에는 같이 해외여행 꼭 가보자꾸나. 고고고~~~

반응형

'생활 > 하루하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돼지아저씨 (2024 1217)  (0) 2024.12.17
선입견 (2024 1208)  (1) 2024.12.09
앱테크 (틱톡 라이트)  (2) 2024.11.26
(과학을) 보다  (7) 2024.10.20
질풍노도 vs. 질풍가도  (26) 2024.10.07

댓글